막대부르크의 마틴 루터

엘베강가에 위치한 돔슈타트(직역:대성당 시)는 마틴 루터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으로 알려져 있다. 13세의 마틴 루터는 1497년 „브루더 폼 게마인잠 레벤“(직역:함께사는 형제)학교 에 입학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이 도시로 들어와 구걸하며 음유시인으로 활동해야 했다. – 그 당시에는 이것이 흔히 있는 일이었다.

1524년은 막대부르크와 종교혁명에 결정적인 의미가 있는 해였다 : 마틴 루터는 그 해 6월에 엘베강가의 이도시의 당시 시장이었던 니콜라우스 슈투름의
부탁으로 설교 하기 위해 이 곳으로 왔다. 그의 체류에 의한 반향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아우구스티너수도원의 교회(지금의 발로너교회)에서의 그의 설교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 이틀 뒤인 1524년 5월 24일 요하니스교회에서 설교를 다시하게 되었다.

단 몇주 후인 1524년의 7월 17일, 시의 거의모든 교회들이 루터주의를  인정하고 카톨릭 미사를 폐지하였다. 대성당 참사회원 성당인 성 세바스티안, 성 니콜라이, 성 강골피 성당들과 함께한 대성당 참사회와 프란치스카너, 도미니카너, 프래몬스트라텐저의 수도원들만이 이 새로운 교리에 반대하고 나섰다. 막대부르크는 개신교의 정상에 올라 도시의 경계를 넘어 빛을 발하였고 „우리 주님의 대변인“이라는 이름을 얻기에 이르렀다.
이 위대한 도시는100년 이상이 흐른 뒤 30년 전쟁에서 정상이 자리에 올랐었던 이유로 재앙을 맞이한다. 1631년 5월 10일 증오를 받았던 개신교의 요새  막대부르크는 가장 어려운 운명의 타격을 받는다 : 틸리와 파펜하임의 황제군대에 의해 수개월간 포위당한 뒤 완전히 파괴되고 만 것이다.

특별히 오늘날 부분적으로 파괴되고 다시 복구된 발로너교회와
요하니스교회, 1886년에 만들어져서 요하니스교회 앞에 세워져 있는 루터의 기념비로서 막대부르크의 아이스레벤을 방문한 유명한 신학자의 설교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행사를 통해  마틴루터의 공적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