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는 “토어가우의 건축물들은 그 아름다움에서 모든 고대 건축물들을 능가한다. 심지어 솔로몬 왕의 궁도 그저 나무로 만든 것이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시티투어를 하거나 토어가우 박물관 길을 직접 걸어가 보면 루터의 말에 수긍할 수 있을 것입니다. 16세기에 만들어진 이 토어가우의 매우 인상적인 시내는 오늘날까지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 기적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토어가우에는 르네상스와 후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옛 건물들이 500여 곳 정도 남아있는데, 이 수많은 문화유산 건축물들은 서로 잘 조화를 이루며 세계적인 수준의 건축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독일에 있는 초기 르네상스의 성 중 제일 잘 보존되어 있는 하르텐펠스 성, 시장을 내려다보며 우뚝 솟아 있는 화려한 시청은 역사적인 이곳 도시 경관의 백미에 속합니다. 토어가우의 르네상스 건축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하르텐펠스 성 본관 건물에 있는 대형 나선형 석조 계단으로, 콘라드 크렙스가 1533년에서 1536년까지 제작한 것입니다. 이 우아한 계단은 별도의 보강재 없이 물렛가락처럼 두 층 높이로 휘감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정문 위쪽을 보면 루터의 모습이 새겨진 메달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루터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최초의 기념물이라고 합니다.
토어가우는 루터의 아내였던 카타리나가 시민적인 삶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도정이 되었던 곳입니다. 토어가우 의원이던 레오나드 크로페는 1523년 부활절 밤, 열두 명의 수녀들을 그림마 옆 님브쉔 수녀원에서 이끌고 나옵니다. 함께 빠져나온 여덟 명의 수녀들과 함께 카타리나 폰 보라는 훗날 비텐베르크로 오게 됩니다.
세월이 지난 후 1552년, 비텐베르크에서 페스트가 창궐하게 되었는데, 카타리나 보라는 전염병을 피해 토어가우를 향해 떠납니다. 그런데 도중에 말이 놀라 날뛰는 바람에 그녀는 사고를 당하게 되어 심한 부상을 입은 채 토어가우에 도착하게 됩니다. 카타리나 보라가 토어가우에 머무는 동안, 그녀의 아들 파울은 지방 귀족의 딸인 안나 폰 바르벡과 약혼을 합니다. 12월 17일에 막내딸 마르가레테의 18세 생일을 마지막으로 함께 하고, 12월 20일에 그녀는 숨을 거둡니다.